'해적' 이라고 하면 흔히 만화 '원피스'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등을 떠올리기 쉽다. 애꾸눈, 외다리, 휘어진 권총, 앵무새, 보물, 갈고리손, 럼주, 그리고 해골 깃발 등등. 한마디로 해적은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며 약탈을 일삼은 조직 폭력배들이다. 폭력과 협박으로 남의 물건을 빼앗아서 먹고 살았으니까 말이다.
-해적의 탄생 (feat.대항해 시대)
해적들은 주로 황금과 값비싼 물건이 바다를 누비던 '대항해 시대'를 무대로 활동했다. 대항해 시대는 한마디로 인류가 바다를 건너서 세계 어디나 갈 수 있게 된 시대이다.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배로 건넌 것은 요즘으로 치면 화성에 도시를 건설한 것과 비슷한 사건이었다. 지금이야 비행기나 여객선을 타면 되지만, 수백 년 전만 해도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배로 건너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항해 기술도 부족했고, 바람이나 해류 등 바다에 관한 지식도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7~18세기에 걸친 '대항해 시대' 무렵엔 배를 만드는 기술과 항해기술이 발달하고, 바다에 대한 지식이 널리 보급되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바다를 이겨내고 안전하게 동서양을 왕래할 수 있게됐다. 그 이후부터 동서양의 특산품과 지식, 사람들이 사시사철 바다를 누비기 시작했고, 해적들은 동서양을 활발하게 오가는 바로 그 배를 노린 것이다.
-각박한 생활이 만든 해적
그렇다면 해적들은 왜 생겼을까? 낭만과 꿈을 찾기 위해? 전설의 보물을 찾아 인생역전을 하기 위해? 그렇지 않다. 알고 보면 해적들 중에 처음부터 해적이었던 사람은 정말 드물다. 대항해 시대에 군인으로, 선원으로 배를 탔다가 어쩌다 보니 해적이 된 경우가 대다수다. 해병으로 출항해 해적선에 붙잡혔다가 그냥 해적으로 눌러앉아 버린 사람도 있다. 사실 해적들 대부분은 선원으로 일해서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 해적이 된경우가 많다. 당시 선원들 대다수는 마흔 살도 못 돼서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사고로 죽을 만큼 항해는 위험했다. 그리고 월급은 커녕 하루 세끼 밥 얻어먹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어쩌다 얻은 값비싼 물건이나 돈은 대부분 배의 주인이나 선장들이 차지하기 일쑤였다. 이렇다 보니 불만을 가진 선원들이 범죄를 저질러 부자가 돼 보겠다는 야심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라에서 부추긴 해적질
대항해 시대에는 상선들도 걸핏하면 해적질에 나섰다. 수백 년 전만 해도 다른 나라의 상선을 약탈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영국 상선이 너무 장사를 잘해서 라이벌인 프랑스 상인이 보기에 얄미우면 대포를 쏴서 침몰시켜 버리거나 칼을 들고 그 배에 뛰어들어서 물건과 돈을 몽땅 빼앗았다. 심지어 나라에서 노골적으로 해적질을 부추기기도 했다. 왕실에선 허가장을 써주고 상인들을 불러 해적들에게 뒷돈까지 대게 했다. 영국이나 프랑스 왕실이 부유한 다른 다라들을 괴롭히기 위해 특히나 이런 일을 많이 했다. 이러한 형편이니 직업적인 해적들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해적들의 최후
대항해 시대가 저물어갈 무렵, 여러 나라들은 바다의 질서를 잡기위해 해적들을 마구 잡아들였다. 이렇게 붙잡히 해적들 대부분이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대부분이 교수형을 당했는데, 은빛 노를 든 관리들의 행렬에 이끌려 교수대에 나온 해적은 신부의 설교를 듣고 최후 변론을 한 뒤, 와인이나 럼주를 한잔 마시고 집행을 당했다. 간절히 원하는 경우에는 꽃다발을 안고 참회를 하며 죽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꽤 유명했던 해적의 시체는 죽고 난 뒤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해적들은 죄를 씻는다는 의미에서 바닷가에 던져져 세 번의 밀물과 썰물이 왔다갔다 할 동안 방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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